예측 가능성과 공식 그리고 트렌드로 움직이는 산업 속에서도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는 아티스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관습보다는 타고난 호기심과 창의적 본능을 따라 스스로의 직감을 믿고 움직입니다. 전설적인 프로듀서이자 DJ인 칼 크레이그(Carl Craig)는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 결과를 미리 알고 시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한마디는 그의 창작 과정뿐 아니라,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성공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고 자라 온 칼 크레이그는 1980년대 후반 도시의 전자음악 신(scene)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후안 앳킨스(Juan Atkins), 케빈 사운더슨(Kevin Saunderson), 데릭 메이(Derrick May)로 구성된 선구적 3인조 ‘벨빌 쓰리(Belleville Three)’의 뒤를 잇는 테크노 2세대 혁신가들의 흐름을 이끈 주요 인물 중 하나였다. 오래전부터 이미 실험과 즉흥성 그리고 경쟁심이 칼 크레이그의 음악적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우린 서로 옆집으로 가서 다른 사람이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듣곤 했어요. 드럼 머신이나 909, 신시사이저를 서로 빌려 쓰기도 했죠. 개인적으로 작업하든, 함께 작업하든 그때 벌어지고 있던 모든 일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어요.” 라고 회상합니다.

40년에 걸친 커리어 동안 칼 크레이그는 8장의 정규 앨범과 6장의 EP를 발매하고, 600건이 넘는 프로듀싱 크레딧과 그래미상 후보 지명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전 세계를 투어하며 자신을 성장시킨 도시와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Detroit Love’ 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도시의 음악적 유산을 만들어가는 동시에 칼 크레이그는 자신만의 사운드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는 69, 페이퍼클립 피플(Paperclip People), 이너존 오케스트라(Innerzone Orchestra), C2 등 여러 이름으로 활동하며 브레이크비트, 재즈, 디스코,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1991년에는 레이블 ‘Planet E’를 설립해 자신의 음악은 물론 케빈 사운더슨(Kevin Saunderson), 무디맨(Moodymann), 케니 라킨(Kenny Larkin), 리클루즈(Recloose) 등 동시대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함께 선보였습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칼 크레이그 본인이 직접 구성한 믹스를 통해 설립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 온 그의 레이블 ‘Planet E’와 그가 남긴 지속적인 영향력을 조명합니다. 함께 공개되는 인터뷰에서는 1980년대 장난감을 통해 전자 장비에 눈을 뜨게 된 계기, 자동차에 대한 흥미가 음악적 열정과 어떻게 맞닿게 되었는지, 그리고 AI 보조 도구들이 생각만큼 새로운 개념은 아닌 이유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Q. 음악이 당신의 삶에서 중심이 되었다고 처음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Carl Craig: 전자음을 내는 무언가를 처음 다뤘던 건 오실레이터(Oscillator)였어요. 사운드 기즈모(Sound Gizmo)라는 작은 장난감이었죠. 아마 30달러 정도였을 거예요. 사이렌 소리, 레이저빔 소리, UFO 소리 같은 걸 낼 수 있었죠. 또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던 장난감 중에 바주카포 모양에 헤드폰이 달린 것도 있었어요. 그걸로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죠. 그래서 밖에 나가서 멀리 있는 친구들에게 “이걸로 네 목소리가 들리는지 한번 들어볼게” 하곤 했어요. 그게 소리를 조작하고 합성하는 데 흥미를 처음 느낀 순간이었죠. 처음으로 실제 신시사이저를 만져본 건 사촌 더그(Doug)의 집이었어요. 그는 Prophet-6 신시사이저(Synthesizer)를 가지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소리를 시퀀스로 연결해 만들 수 있었죠. 당시 유행하던 노래가 해럴드 팔터마이어(Harold Faltermeyer)의〈Axel F〉였어요. 그 곡의 멜로디를 신시사이저로 처음 따라 쳐봤던 게 제 시작이었습니다. 아마 1984년쯤이었죠. Q. 스튜디오 셋업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화했나요? 그리고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되는 장비가 있을까요? Carl Craig: 처음으로 제가 직접 구입한 신시사이저는 Prophet-600이었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면 “왜 Six-Trak Prophet을 사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그땐 그냥 600을 샀죠. 저는 음악관련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제 예산 안에서 Moog Chroma 같은 무그(Moog) 장비를 구할 기회도 없었어요. 결국 나중에는 Prophet을 팔고 그 당시 엄청 인기가 있던 Yamaha DX11 신시사이저를 샀죠. 그때는 왜 사람들이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를 팔고 디지털 신시사이저로 바꾸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두 사운드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Prophet은 조금 허스키하고 가벼운 소리를 냈지만, 그 안에는 야마하 사운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유기적인 감각’이 있었어요. 물론 그 시기에는 야마하의 전자음도 매력적이었죠. 당시 Rhodes 사운드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거든요. 하지만 저는 메뉴를 끝없이 뒤질 필요 없이 소리의 모든 요소를 손끝으로 직접 다룰 수 있는 그런 악기를 원했어요. Q. 요즘 AI 기반 음악 제작 도구에 대한 논의가 많습니다. 이런 도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Carl Craig: 제 생각에 AI는 결국 또 하나의 ‘도구’일 뿐이에요. 예전에 LinnDrum이 등장했을 때도 사람들은 불편해 했죠. Mini Moog가 나왔을 때도, Yamaha DX7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늘 그런 논쟁이 반복되죠. 하지만 저는 AI가 모든 것을 대신 만들어주는 시대라는 개념에는 조금 거부감이 있어요. 음악에는 반드시 인간적인 요소, 즉 ‘사람의 감정과 손길’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AI를 사용하더라도, 그 안에는 반드시 인간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Q. 그렇다면, 윤리적이거나 문화적인 우려도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Carl Craig: 맞아요. 하지만 우리가 항상 부딪히는 문제는 결국 귀로 들었을 때 ‘좋게 들린다’는 사실이에요. 많은 사람들은 음악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그러니까 AI가 만든 음악이든 아니든 그냥 듣기 좋으면 그만이죠. 저는 예전부터 음악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배경’ 같은 존재, 말하자면 ‘벽지(wallpaper)’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고 말해왔어요. 지금 스포티파이(Spotify)의 구조나 음악 소비 방식을 보면 그 흐름이 분명하죠. 얼마 전에는 중국에서 사람들이 매일 듣는 음악 중 약 40%의 보컬이 AI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읽었어요. 또 제가 보기엔 AI가 가장 잘 만들어내는 건 트랩(Trap) 음악이에요. 실제 트랩 트랙과 AI가 만든 음악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아요. 이걸 보면서 느낀 건, 앞으로 음악이 지금보다 훨씬 더 상업화될 것이라는 점이에요. 이런 기술은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단지 이제야 소비자 수준으로 내려온 것 뿐이죠. 예를 들어 델타항공(Delta Airlines)이나 크라이슬러(Chrysler) 같은 기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AI를 활용해왔어요. 제 생각에 워너(Warner)나 EMI 같은 대형 음악 레이블도 마찬가지예요. 이들은 결국 크라이슬러, 델타항공, 코카콜라 같은 글로벌 기업들과 다르지 않아요. 이미 오래전부터 AI를 활용해온 산업 구조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거죠. Q. 투어로 이동이 잦은데, 정신적·신체적으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Carl Craig: 저는 항상 채소를 먹으려고 노력해요. 여행 중에는 건강하게 먹기가 쉽지 않거든요. 하지만 채소를 먹는 건 정말 중요하고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도 정말 중요하죠. 특히 공연이 연달아 다섯 번 정도 있을 때는 더 그렇죠. 공연이 끝난 뒤에는 꼭 건강하게 식사하고 물을 많이 마시려고 해요. 하지만 투어 중 가장 큰 건강상의 위험은 공연을 마친 직후 예상치 못한 분쟁이나 전쟁이 터지는 나라에 머무는 상황이에요. 그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질 때가 있거든요. 그리고 물론, 청력 관리도 매우 중요해요. 저는 가능하면 조용한 시간을 찾아서 귀가 회복할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습니다.

Q. 투어 일정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Detroit Love’ 이벤트인데, 이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Carl Craig: 단순히 친구들과 함께 공연하고 싶었어요. 2011년 Planet E 20주년 투어 때처럼요. 하지만 Detroit Love는 그보다 더 광범위합니다. 디트로이트 출신뿐만 아니라 디트로이트 음악과 연결이 있거나 음악을 응원해온 사람들도 포함되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Detroit Love 파티에는 주로 저, Moodymann, Stacy Pullen 등이 참여하지만 과거에는 Moritz von Oswald, Luciano, Loco Dice, Mirko Loco 등도 함께 했습니다. Q. 올해 Planet E가 30주년을 맞이했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Carl Craig: 정말 좋습니다. Planet E는 부티크 레이블이에요. 마치 동네 레코드 가게 같다고 할까요. 가게에 들어서면 항상 제가 카운터 뒤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느낌이죠. 우리는 언제나 최고 수준의 음악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이 부분을 매우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 음악을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해요. 항상 우리가 제공하는 음악이 최상급임을 확실히 하고 싶기 때문이죠. Q. 돌아보았을 때, 초기 디트로이트 커뮤니티에서 그리운 점이 있나요? Carl Craig: 저는 더 끈끈한 동료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때 우리는 서로 옆집으로 가서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듣곤 했어요. 그리고 드럼 머신이나 909, 신시사이저를 빌려 쓰기도 했죠. 개인적으로든 함께 작업하든 모든 것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도 치열했어요. 특히 데릭 메이(Derrick May), 케빈 사운더슨(Kevin Saunderson), 후안 앳킨스(Juan Atkins) 사이에는 엄청난 경쟁이 있었죠. 저는 그 경쟁심과 동료애, 두 가지 모두가 그립습니다.
Q. 지금까지 발매된 비전자음악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무엇인가요? Carl Craig: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전자음악이 들어간 음악을 정말 좋아하지만 굳이 하나 꼽자면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Get Up With It>를 선택하겠습니다. Q. 만약 처음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20살의 젊은 자신에게 직접 말을 건넬 수 있다면, 뭐라고 해주고 싶나요? Carl Craig: 저는 젊은 시절의 제게 모든 실수를 지금처럼 온전히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집중을 계속 유지하고 방해받지 말라고도 하고 싶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이어가라고요. 그 덕분에 지금의 제가 여기 있는 거니까요. Q. 이번 칼하트윕 라디오에 대한 구상이나 기대할 점이 있을까요? Carl Craig: 음, 굉장히 즉흥적인 결정이 될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즉흥적인 방식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미리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All Carl Craig pictures by Katja Ruge